[공간+너머] 3부 新남촌,강남―성장의 속도 ⑨ 말죽거리 신화

[2009.05.25 21:28]


“1518년(중종 13년) 12월13일 (임금께) 삼가 출발 숙배(肅拜)를 올리고 동대문(東大門)을 나와 양재역(良才驛)에 도착하였다. 내가 떠나는 것을 섭섭해하여 따라 나선 오징지(吳徵之)와 함께 역 동편에 있는 역졸의 집에서 잤다. 다음날 아침에 오징지와 아쉬워하며 헤어졌다.” (황사우 ‘재영남일기’ 중에서)

서울 동경하며 서울 떠나고픈… 갈등의 교차역

황사우(1486∼1536)는 조선 중종 때 경상도 도사(아감사)를 제수받는다. 그는 오징지와 함께 양재역에서 자고 아침에 오징지의 배웅을 받으면서 말을 타고 부임지로 내려간다. 양재역은 한양 도성에서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로 가는 첫 번째 역이었다. 삼남지방으로 나가는 벼슬아치나 삼남지역에서 도성 안으로 들어오는 벼슬아치는 반드시 양재역을 거쳐야 했다. 말하자면 양재역은 교통의 요충지였다. 임금에게 제수를 받으면 동대문을 나와 한강을 배로 건너 양재역까지 말을 타거나 걸어갔다.

도성 이남으로는 양재역을 시발점으로 해서 30리마다 역이 있었고 역을 관장하는 역장인 찰방이 있었다. 벼슬아치나 암행어사는 역에서 대기하고 있는 말을 징발할 수 있었고 30리마다 설치된 역에서 말을 바꿔 탈 수 있었다. 역에는 벼슬아치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도 부근의 주막집에서 식사하고 잠을 잘 수 있다.

다른 어느 역보다도 말죽을 많이 먹여야 하는 거리였으므로 말죽거리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으로 본다. 1624년 이괄의 난 때 인조 임금 일행이 남도지방으로 피난하면서 허기와 갈증에 지쳐 이곳에서 급히 팥죽을 말 위에서 먹고 과천으로 떠났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독구리 마을은 조선시대 한양으로 입성하는 중간에 있는 마을로 지금의 말죽거리와 매봉산의 중간에 오솔길이 있는데 이 길을 왕래하는 사람들이 한양에 입성하기 전에 잠깐 쉬는 마을이었다고 한다.

요컨대 양재역은 도성에서 지방으로 내려가고 지방에서 도성으로 올라오는 관문이었다. 배웅하고 마중할 사람은 양재역까지 따라 나와 사람을 떠나 보내거나 맞이하거나 했다. 일종의 플랫폼인 셈이다. 말죽거리, 양재역은 지금도 교통의 요충지다. 3호선 전철역이 있고 신분당선 공사 또한 한창이다. 양재역에서 남쪽으로 가면 분당이 나오고 북쪽으로 곧게 나 있는 강남대로를 지나가면 한강다리가 나온다. 한남대교를 지나면 곧바로 남산, 서울의 중심부에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서울의 중심부는 어디까지나 한강 이북이었다. 한강 이북에 도성과 궁궐과 권문세도가의 집들이 있었다. 한강 이남에 대한 관심이 불거지게 된 것은 한국전쟁 이후부터였다. 한국전쟁 당시 서울시민 80%가 피란을 하지 못해 공산 치하 혹독한 3개월을 보냈다. 전쟁이 끝났어도 공산 치하 서울에 대한 공포는 모든 서울시민에게 오랫동안 두려움으로 남았다.

그것은 "인민군이 또 쳐내려 오면 어떻게 하느냐"하는 트라우마적인 공포였다. 한국전쟁 당시 한강 위에는 제1한강교와 광진교 두 개 교량이 있었다. 제2한강교(양화대교)가 가설되기는 했다. 그러나 그것은 전쟁이 나면 군 작전용으로만 쓰이게 되어 있었다. 1960년대 중반 서울의 인구는 이미 347만명이었다. 한국전쟁 때보다 두 배나 훨씬 넘는 인구수였다. 도강에 대한 두려움은 빈부와 계급의 높고 낮은 것에 상관이 없었다. 모두 다 죽을 수도 있다는 극단적 두려움이었다. 이렇게 해서 제3한강교는 건설됐다. 제3한강교(한남대교)는 강남개발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한국민들이 가지고 있던 근원적 공포, 공산주의와 전쟁에 대한 공포에서 연유한 것이다.

66년 제3한강교가 착공되자 강남개발에 대한 관심이 마른 풀에 불 놓은 듯 일어난다. 이어 박정희 대통령은 67년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발표한다. 제3한강교에서 남쪽으로 7.6㎞에 달하는 고속도로를 무상으로 확보하기 위해 영동 구획정리사업이 실시된다. 강남 고속버스터미널과 영동아파트 지구개발 계획에 온갖 종류의 세금 면제가 이루어진다. 논밭만 있는 강남의 넓은 땅은 경제·택지 지구의 무진장한 공급원이 된다.

여기서 '말죽거리 신화'가 생겨나게 되었다. 그것은 광적인 땅값 상승이었다. 제3한강교가 착공될 당시 강남구 신사동 일대의 땅값은 한 평에 200원 정도였으나 공사 착공 후 1년이 지나자 한 평에 3000원을 호가하게 됐다고 한다. 60년대 후반에서 90년대까지 폭발적인 지가 상승이 계속된다. 이렇게 해서 말죽거리는 강남 교두보 역할을 하면서 서울의 중심지로 진입하게 된 것이다.

지금 강남은 지하철 2·3·4호선 통과, 대규모 아파트 건설, 고속버스터미널, 법원 및 검찰청 이전, 제8학군 등으로 서울에서 황금덩어리의 땅이 되었다. 도성 이남으로 내려 가기 위해 잠시 쉬며 말에게 죽을 먹이던 말죽거리는 그야말로 상전벽해의 상징이 되었다.

격동의 역사를 남성 판타지로 투사시킨 영화가 유하 감독의 '말죽거리 잔혹사'다. 주인공 현수는 78년 유신 말기 개발붐에 들어선 강남의 정문고로 전학을 오면서 군사독재 매커니즘이 고스란히 답습되는 고등학교의 현장에 진입한다. 과잉경쟁과 입시에 대한 중압감, 군사주의적 계급성과 폭력의 재학습, 뇌물과 상납, 집단 구타와 추방…. 반공과 개발 및 성장 중심 이데올로기가 학교를 지배했던 시절, 학생들은 절대복종과 무한경쟁 속에서 한국 현실의 폭압성을 내면화해 나간다.

여기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성적이든 주먹이든 집안 배경이든 어느 것 하나는 '짱'이야 한다. 성적도 주먹도 집안배경도 '짱'이 되지 못한 '찌질이'들은 오직 '이소룡'에 열광하며 수컷의 영웅판타지에 도취될 수밖에 없다. 영화의 마지막, 현수가 이소룡의 쌍절곤을 준비한 채 부들부들 떨리는 마음으로 선도부 학생에게 "야, 옥상으로 올라와!"라고 말한다. 공부도 주먹도 집안 배경도 '찌질이'였던 이들은 영화 속 현수의 말을 들으며 그들이 학창시절 끝내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남성 판타지를 완성시킬 때가 되었다는 통쾌감으로 벅차 오른다. 한국의 근대사는 남성 폭력, 저항 서사의 다른 이름인 셈이다.

말죽거리는 도성을 떠나는 곳이기도 하고 임금을 배알하러 올라오던 곳이기도 했다. 그 경계에서 운명의 시간을 맞는 곳이다. 그러다 근대에 들어 개발 성장의 초입부에서 군사독재, 과잉경쟁의 냉혹한 욕망의 비등점이 된다. 현대로 들어와 말죽거리는 서울 역사에서 경제·교육·행정의 중심이 된다. 제도의 지배가 넘쳐나는 만큼 이탈자와 저항자가 동시에 넘나드는 역, 서울 도심과 분당 사이의 분기점, 강호로 진입하거나 강호를 떠나려는 무림고수들이 갈등하는 공간, 이 경계에 말죽거리가 있다.

말에게 죽을 먹이면서 다시 또 다른 세계로 넘어가게 될 자신의 통과의례를 생각하는 공간. 환상과 환멸, 동경과 모멸이 교차하면서 자신을 버리고 다시 자신을 얻어야 하는 경계의 공간. 말죽거리, 양재역은 서울을 동경하면서도 끝없이 서울을 떠나고 싶은 이들의 분열의 교차역이다.

◇ 글 김용희

1964년생. 이화여자대학 국문학과와 같은 대학원 졸업. 92년 계간 '문학과 사회'로 문학평론가 데뷔. 현재 평택대 국문학과 교수이자 문학평론가. 저서 '페넬로페의 옷감짜기-우리시대 여성시인' '우리시대 대중문화' '천개의 거울-김용희의 영화읽기', 소설 '란제리 소녀시대'등이 있다.

◇ 그림 강철기

1965년생. 추계예대 서양화과와 중앙대 예술대학원 졸업. 제27회 대한민국미술대전 최우수상 수상. 국민일보현대미술초대전, 한국미술의 빛 초대전 등 단체·기획전 250여회. 서울 베이징 나가사키 등서 개인전 16회. 현재 추계예대 겸임교수. 국립현대미술관 작품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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